바이올렛 스테이지

꿈에 보았던 젖은 안개 속에 감춰져 있던 내가 있었음을 손을 놓았던 저편의 세상엔 또다른 나와 마주하였음을

귓가에 흐르는 보랏빛 꿈에 시간이 뒤뎦여 사라져 가는 나를 꼭 붙잡아

사랑하는 나와 만난 그때 나의 현실이 무너져 가 숨쉬듯 삼켜버린 꿈이 시간을 되돌리고 있어

손에 잡힐 듯 마른 웃음들은 바스라질 때쯤 박수로 포장해

사실은 무대에 올라가지도 못할 거면서 넌 그리 즐거이 웃음은 왜일까?

웃음짓는 눈과 만난 그때 나의 무대가 무너져 가 숨쉬듯 삼킨 손가락이 시작을 되돌리고 있어

사랑하는 나 (x9)

바이올렛 스테이지는 제 입시곡이 될 뻔한 곡입니다. 그래서인지 Q씨가 정말 좋아하더군요. 그 사람을 채워줄 목적으로, 그리고 약간의 '1번 트랙의 품격' 어그로를 담아 첫 트랙으로 선정했습니다.

다른 곡에 비해서 확 휘어잡는 느낌이 마치 보라색의 깊고 두꺼우며 센 바람 같달까요. 그렇다고 투명도가 완전히 사라진 쨍한 보랏빛이나 태풍까지는 아니고요. 적당히 안개스러운 느낌입니다. '자 이제 모험 시작!' 이라는 웅장한 서사시 느낌도 좋지만, 언제 모험이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게끔. 눈 떠 보면 온통 중후한 안개가 차분히 바다를 덮고 있죠. 그 안개의 수분감을 느끼며.

악기별로 실제 연주하는 공간에서의 위치를 생각하며 리버브를 배치하면 좋다고 들었습니다. 그걸 시험삼아 해봤는데 악기들이 다 함께 춤추는 느낌이 들어서 매우 기뻤습니다. 휘몰아치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중음역대를 두껍게 설졍했습니다. (귀에 바람이 불 때 나는 소리를 상상해 보세요.) 메탈릭하게 처리한 마지막의 '사랑하는 나' 가 굳.

가사의 모티브는 쓰고 난 뒤에 잡는 편입니다. 1절은 계획된 바가 있는데, 2절까지 붙여쓰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 ㅡ 또는 무대 위에서 고독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. 모두의 이목이 꽂히는 곳. '부적격자' 는 비웃는 곳. 참혹한 무대의 세계이죠.


<aside> 💡 2019년 당시에 가사를 쓸 때의 감정: 저는 고등학교 때 학교 장기자랑에서 어떤 동그란 사람이 노래하는 것을 봤습니다. 노래를 잘 했습니다. 다행히 별로 의식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, 그를 향한 시선은 자비란 없는 서열적 웃음 같았습니다. 관중들이 치는 박수는 매우 의례적이며 광대같은 박수라고 생각했습니다. 전 그 사람과 아무 관련은 없지만, 정말로 웃음을 빙자한 박수에 참담함을 느꼈습니다.

</aside>

<aside> 💡 "무대에 올라선 사람에게 가식적으로 박수치는 모습이 역겨웠다. 의외의 모습이라고 인지하고 박수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. 지금 일어나고 있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. 재해석은 의미가 희박하다. 의외의 모습을 낼 때 나오는 청중의 웃음을 제일 싫어한다. 왜 변하지 않느냐고, 고립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벗어나려고 시도하면 웃음으로 심리적 압박 (?) 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.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보며 끝까지 웃지 않았다. 단지 박수만 쳤다. 잘 했다고 생각한다."

</aside>

아무튼 지금은 보라색을 이미지 컬러로 가진 강기찬 | 회장 아들 이라는 캐릭터의 입장에서, 무대에 선 자가 느끼는 살벌한 돌변감 ㅡ 관중은 언제든지 예측 불가하며 그 규모 또한 보라색 안개가 내려앉아 추산할 수 없다는 느낌.